여행길에서...

속초 2박3일 [2014. 1. 5.~7.]

淸巖 2014. 1. 27. 21:32

 지난 11월에 속초를 다녀왔지만 불행(?)히도 또다시 속초를 찾았다.

그때 둘러본 몇곳을 이번에는 좀더 자세히 볼 요량으로~~ㅎ

 

 

동명항 등대전망대 아래....

 

 

영금정...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면 거문고소리가 난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동명항

 

영금정 아래 해돋이 전망대....

속초 등대전망대...

이곳에 오르면 속초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파도소리를 열심히 들었지만 내귀에는 거문고소리가 안들린다...ㅎ

 

 

 

 

 

 

 

 

양미리를 말리고있는 중.........

연탄불에 구워먹으면 정말 맛있지요~~

 

이곳 왕건횟집에서 싱싱한 자연산 도다리회로 저녁을 때우고....

다음날 아침 콘도에서 바라보는 일출 광경....

 

 

 

 

속초에 오면 늘 묶는 현대 수 콘도미니엄...

 

눈덮힌 울산바위..... 

 

좌측의 신선봉과 우측의 마산봉.....

대청봉 방향.....

속초시내...안개로 인한 실루엣....

이곳에서 아침을 선지해장국으로 맛있게 먹고....

지난번 들렀던 하조대를 다시 찾았다...

 

 

등대에서 본 하조대 전경. 명승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개국공신 하륜과 조권의 성을 따 명명한 ‘대(臺)’로 유명한 일출명소이기도 하다. 앙숙이었던 하씨 집안의 총각과 조씨 집안의 처녀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했고, 끝내 이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하조대 정자. 육각정으로 1998년에 복원한 것이다.

하조대 위에는 동명의 현판이 걸린 6각 정자가 서있다. 정자가 맨 처음 세워진 것은 조선 정종 때라 한다. 이후 퇴락하여 철폐한 것을 1940년에 8각 정자로 다시 세웠지만 6·25전쟁 때 불탔다. 이후 1955년과 68년에 각각 재건되었고 지금의 정자는 98년에 해체 복원한 것이다.

 

 

애국가 소나무 혹은 애국송으로 불리는 하조대의 소나무.

하조대 시스택 마루에는 범상치 않은 고고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수 년 전 이 소나무와 어우러진 하조대의 일출이 애국가 영상에 등장하면서 애국가 소나무 혹은 애국송으로 불린다.

 

정자를 둘러싼 솔숲 사이로는 이웃한 곶 위에 선 하얀 등대가 보인다.

정자 앞에는 하조대 글씨가 암각된 두 개의 바위가 있다. 조선 숙종 때 참판 벼슬을 지낸 이세근이 새긴 것이라 한다.

 

 

휴휴암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 1번지

(대한불교 조계종 3교구 본사 신흥사말사)

 

1999년 10월 보름날 홍법스님이 무지개가 뜬 자리를 살펴보니 관세음보살 형상의 바위가 바닷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곳에 암자(묘적전)를 마련하여 세상에 알렸다.

 

천개의 눈과 귀로 중생의 괴로움을 모두 듣고 천개의 손으로 중생을 자애롭게 구원한다는 관세음보살님은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웅대한 석재나 불상으로 조각 되어 있지만 휴휴암에는 해안가 절벽에 천연 암반 형태로 편안하게 누워 계신다. 절 이름이 휴휴암이 된 것도 관세음보살님이 바닷가에 편안하게 쉬고 계신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한다.

 

볼거리로는 묘적전, 비룡관음전, 황금종각, 지혜관음보살상외에 절 앞 해안 연화대에는 여러 형상의 바위인 발바닥바위, 발가락바위, 여위주바위, 태아바위, 거북바위, 달마바위 등이 있다.

불이문

해당화열매가 빨갛게 탐스럽다.

 

웃고있는 포대화상

 

부를 상징하는 의미를 부여한다 해서 얼마나 배와 젖가슴을 만졌는지 손때에 광이 난다.^^*

포대화상은 몸집이 크고 배가 나왔다.

 

항상 호탕하게 웃고 자루를 짊어지고 다니며, 누구나 길흉화복을 물으면 대답하는데 틀림이 없었다. 사람을 만나면 복을 지어야 복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치고, 어린아이들을 좋아하여 자루 속에 있는 것은 나누어 주고 다니는 분이다.

 

고양이 모녀....

 

달마 바위(달마가 두 바위 사이를 헤집고 나오는 형상)

 

 

 

발가락 바위

 

 

관세음보살바위

 

보살님의 말씀 중에는 주지스님과 청설모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던 중에 청설모한마리가 나타나서 자꾸 주지 스님의 기도를 방해하였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여긴 스님은 청설모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았는데 그때 무지개가 뜨면서 수면 밖으로 관세음보살님의 형상이 나투셨다고(모습을 드러내셨다고) 합니다.

 

 홍법스님은 "이전까지는 바닷물에 잠겨있던 관세음보살님이 해수면이 낮아지며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암자측의 설명대로 휴휴암 주변에서는 관세음보살의 모습과 똑같은 신기로운 형 상의 바위를 비롯해 발가락 모습이 선명한 바위 등 온갖 기이한 모습의 바위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암자측이 설명하는 자료를 보면 관세음보살은 묘적전 법당이 올려다 보이는 해변에 위치해 있다. 자그마한 절벽을 이루는 큰 바위 아래, 바닷물이 들락날락 거리는 돌무덤에 위치해 있는 관세음보살 상은 길이가 13m로 보면 볼수록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관세음보살 모습 그대로다. 또한 관세음보살 상 우측에는 관세음보살을 향해 기어가는 모습을 한 거북이 모 양의 바위를 비롯해 발가락이 선명한 모습의 발 모양 바위와 바닥이 갈라진 모습의 또 다른 발 모양의 바위, 손가락을 말아 쥔 모습의 주먹바위 등이 흩어져 있어 신비 감을 더하고 있다. 암자측은 거북이 모양 바위는 관세음보살을 향해 기도하는 남순동자로, 주변에 있는 2개의 발 모양 바위는 누워 있는 관세음보살 상에서 볼 수 없는 관세음보살의 발로 표현하고 있다. 휴휴암의 한 스님은 "관세음보살님은 바닷가 절벽에 항상 계신다고 했는데 휴휴 암 바닷가에서 그 몸을 나투신 것"이라며 "이런 의미로 볼 때 휴휴암은 그야말로 관음성지"라고 설명이 되어있다.

 

사실 난 이곳을 못찾아 사진을 빌려왔습니다. 다음에 다시 가게된다면 필히 보고 싶군요!

 

 

 

 

외항치항 및 죽도가 보이고.....

 

비룡관음전에서 바라본 너래바위의 연화법당

넓은 바위는 연화법당이라고 합니다. 1000명 정도의 사람이 서 있을 수 있을 정도로 넓습니다. 연화법당에서 바라보면, 제일 중요한 관세음보살님 형상의 바위와 바로 옆에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보이며, 그 주위에 발가락 바위, 발바닥 바위, 주먹 바위 등이 한눈에 펼쳐져 보입니다.

 

벽추목

벼락맞은 대추나무...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범종각

 

금종은 최근에 완성한 듯하고, 바닥에는 종소리를 반향하도록 얕은 구덩이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공이처럼 반듯하지 않고 바닥이 평평하여 반사가 적절하지 못할 것 같아 종소리의 여운이 미진할 듯하기도 하지만, 누런 빛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부시게 하며 엄숙한 마음가짐을 갖게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휴휴암 관음범종

 

범종루의 삼천삼백삼십관 관음범종은 현재 사찰에서 사용하고 있는 종으로는 가장 크고 웅장하며, 전체 순금을 입혀 황금종이 되었다 한다. 종을 치면 업장이 소명되고 앞길이 열리며 복이 들어 온다고 한다. 또한 지옥 중생들도 극락세계로 인도하기 위하여 종소리를 울려주는 것이라 한다.

 

지혜관세음보살상

 

흥법 스님이 신묘장구대다라니 첨만독 천일 철야기도를 드리는 2006년 봄에 바다 절벽 밑에서키가 크고 하얀 옷을 입은 아름다운 관세음보살님이 바다에서 용출하신 모습을 친경하고 불사원을 세워 익산에서 나오는 화강암으로 휴휴안 동쪽 끝자락에 보살님 높이 33자 통 돌로 무게 115t 3단 좌대를 합해 총 높이 53자의 지혜관세음보살님을 모셨다 한다.

우측에는 동해해상용왕신, 9용신, 좌측에는 남순동자님을 모셔져 있다.

 

남순동자는 관세음보살을 왼쪽에서 보좌하며 “백의 관음보살은 설함이 없이 설하고

“남순동자는 들음 없이 듣는다.

감로병의 버들은 언제나 여름이요

바위 앞의 푸른 대는 어디에서나 봄이로다”라는 관음 게송이 전한다.

 

휴휴암은 강원도 양양군 현암면 광진리 1번지로 7번국도 옆에 위치하고 있어 휴가나 강원도 여행시 가끔씩 지나다 들리곤 했던 곳이다. 휴휴암 입구에서 조금 200m정도 지나면 영동농협에서 운영하는 ‘하늘과바다사이’라는 펜션에 하루 정도 묵으며 마을 이장님과 어촌계 아시는 분들과 배를 타고 나가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1997년 홍법스님이 묘적전이라는 법당하나로 창건하였고, 1999년 관세음보살 형상의 바위가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려졌다 한다. 입소문을 통하여 전국의 불자님들과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기도와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암자이기도 하다.

 

몸도 쉬고 마음도 쉬고 팔만사천의 번뇌 망상을 모두 놓고 쉬고 쉰다는 휴휴암(休休庵).

휴휴암은 “자연의 순리로 그 가치를 알고 귀중하고 소중하게 생명의 존중과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휴휴암은 온갖 풍파, 모진 세상에 몸도 쉬고 마음도 쉬고 또 쉬면서 기도하는 곳“ 이라고 한다.

지혜관세음보살상에서 바라본 너래바위(연화법당)

 

휴휴암은 임해 사찰로 앞 큰 바다안에 너래바위가 있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할머니는 늘 이곳에서 미역을 따고 드넓은 너래바위에서 말리다가 어느날 우년하 무리지어 노닐고 있는 물고기를 보기 시작했는데 날이 갈수록 그 수가 늘어나 신기해 휴휴암 주지 흥법 스님께 이를 알렸다 한다.

 

주지 스님은 “관세음보살님도 이곳 바다에서 누워 쉬고 계시는데 하물며 미물도 이곳에서 쉬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면서 하주 보살님을 통해 자비행으로 고기밥을 주기 시작했다 한다. 자비행을 행한지도 여러 달이 지나자 물고기들은 수십마리가 수백마리, 수천마리로 순식간에 떼지어 몰려들어 장관을 연출해 이곳을 찾는 불자님들이나 관광객들이 신기해 한다. 휴휴암에서는 이곳을 연화법당이라 부르고 있으며, 바다에 있는 거대한 너래반석이 연밥같이 파여 있고 파도가 치면 물이 뺑~돌아서 부딪치는 것이 마치 하얀 연꽃이 피어 있는 것 같다고 해 이 같이 부른다 한다.

 

 

묘적전

 

1997년 묘적전을 짓고 법단 안의 나무 먼지를 아무리 청소해도 다 없앨 수가 없었고 법당을 공개할 날이 다 되었는데 스님이 일에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다. 앞바다에 나가서 스님들이 멱을 감고 빨래를 하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에서 깨어 법당안을 살펴보니 그렇게도 없애기 힘들었던 나무가루들과 먼지들이 깨끗하게 살아지고 없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휴휴암의 본전은 묘적전(묘적전)이라 하고 그 안에 천수천안을 가지고, 인간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져 주는 자대비하신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지요. 관음보살은 인간의 소원을 간구할 때 그것을 들어주시는 부처님의 사자이며, 스스로 부처이며, 삶속의 어머니이므로, 내가 소원하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바이 마을...

 

아바이마을의 정확한 행정구역 주소는 "대한민국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이다. 청호동은 동쪽으로 바다, 서쪽으로 청초호를 사이에 두고 형성된 마을이다. 본래는 사람이 살지 않던 백사장으로 실향민들이 차츰 이곳에 몰려 들면서 1954년 11월 17일 법률 제350호인 '수복지구 임시 행정조치법'에 의거하여 수복 이후 북쪽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거주하면서 "속초리 5구"가 아바이마을의 시작이다.

이후 1966년 1월 1일 동제 실시에 따라 청호동이라 했는데 청초호와 인접했기 때문이다. 함경도 피난민들이 많음에 따라 함경도 사투리인 '아바이 마을'이라고 전체를 별칭하기도 하며 1통은 심포마을, 3통을 여흥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처음 이곳에 정착한 주민들은 사람 허리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고 창문과 출입구만 지상으로 내놓은 토굴같은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해일이 일면 마을이 휩쓸려 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피난민의 생활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 7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분적으로 주택을 개축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마을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본래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곳이었으나, 수복 이후 피난민들의 거주로 마을이 형성되어 속초리(束草里) 5구가 되었다가, 청호동(靑湖洞)으로 바뀜. 청호(靑湖)라는 이름은 청초호(靑草湖)에서 온 것이 틀림 없다. 청호동(靑湖洞)에는 함경도(咸鏡道)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까닭으로, 함경도(咸鏡道) 사투리 '아바이'를 사용하여 '아바이 마을'이라고도 한다.

 

 

 

 

갯배..

 

청호동과 중앙동을 이어 주고 있는 도선 갯배는 일제말기에 속초항이 개발 되면서부터그 세월을 함께 하고 있다.
예전에 반부령(청호동)으로 불리던 이곳은 속초 부월리2구(청호동)와 속진(영랑동과 중앙동의 일부)이 맞닿아 있던 것을 준설, 외항과 내항(청초호)이 통수되고 폭 92m의 수로가 형성되자 속초읍에서 갯배 1척을 만들어 도선에 이용하게 되었는데 크기는 트럭 한 대와 우마차 한 두 대를 같이 실은 크기였다.
한국전쟁이 발발되면서 폐선 되었다가 수복이 되면서 거룻배(종선)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때 소위 조막손 영감(김영학)이라고 불려진 이가 주업으로 하였으나 자기 소유의 거룻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 곳 청호동은 한국전쟁 전에는 정어리 기름공장이 두세 군데가 있었는데 이후 피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일시적인 움막형태의 집들이 들어서 신포마을, 맹고치마을, 파꼬치마을, 신청마을 등의 자기고장 마을의 이름을 딴 집단촌을 형성하게 되었고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까닭으로 "아바이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마을 사람들이 거룻배를 이용하는 것은 불편한 것이 여간 아니였고, 특히 자전거나 손수레의 이용은 더 어려웠다. 한국전쟁 후 군정에서 민정으로 이양되면서 1955년초 속초읍에서 지금 모양의 갯배 1척을 만들어 5구에 관리를 맡기게 되었고 1961년도에 1척을 더 만들어 정식 도선업 허가를 받아 재향군인회 속초지회에 위탁하여 운영을 하게 하였다.

속초시는 1988년에 다시 청호동 개발위원회에 위탁 운영,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재의 갯배는 1998년에 4천만원을 들여 35인승 FRP선으로 개조한 것이다. 갯배의 운항 시간은 오전 4시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운행하고 있으며, 청호동인들에게는 처음부터 무료 혜택을 주고 있다. 한해동안의 유료 이용객수는 약 15만~20만명이며 무료로 이용하는 청호동민의 이용도 연간 20만이 넘으면서 갯배는 피난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소중한 기억으로 또한 속초시민과 동고동락하는 삶의 현장으로 그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가을동화 촬영지....

 

 

 

단천식당...

아비아 마을 식당하면 단연 이곳을 손꼽길레 꼭 하번쯤은 가봐야겠다고 다짐하고 가봤는데요....

지난번들렀던  맞은편 검정기와집 보다 못한것 같은...

암튼 식당안이 넓어서 좋았지만 분위기랑 모든것이 조금은 아닌것 같았았습니다.

 

 

속초하면 단연코 제일먼저 손꼽는곳이 중앙시장이지요!

왜냐면  이곳엔 그 유명한 닭강정집이 있으니까요~~ㅎㅎ

 

 

 

 

 

그리고 두번째 유명한집 ....

찹쌀 호떡집....

주인의 양해를 구한 뒤 한컷 찰칵!!

 

다시  2일째 해는 뜨고.....

 

 

 

 

 

설악동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겨울 설악산.........

정말 넘 멋지잖아요?

바닥은 아직 눈이 녹질 않아서 완전 썰매판길....

 

언제나 늠름한 금강송...

 

 

신흥사 통일대불 청동좌상....

마등령의 세존봉...

 

커피 벆는 한옥....

 

 

 

 

사실 커피맛을 제대로 알진 못하지만 이집의 커피는 뭔가가 조금은 다른듯.........

 

실내장식도 맘에 쏘옥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