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똥령의 본래 이름은 소동령(小東嶺)이다. 동쪽의 작은 고개라는 뜻이지만 '작다'에 방점을 찍으면 안된다. 백두대간의 고개 중에서 낮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소똥령은 만들어진 긴 시간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옛날 고성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한 국도 1번지라는 말에 차량소음으로 가득찬 지금의 1번국도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길은 다르다.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과거길에 오르는 선비나 물건을 사고팔러 다니는 장사치들이 힘겹게 넘던 골짜기다. 그만큼 산세가 험해 산적도 자주 출몰했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도 소동령이라는 것 외에 재밌는 설이 많다. 원통장으로 소를 팔기 위해 소똥령을 넘다가 주막에서 소가 똥을 하도 많이 누어 소똥령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는 것과 많은 세월 사람들이 소똥령을 넘다보니 자연적으로 길이 패여 생긴 소똥모양의 봉우리를 두고 소똥령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라는 설이다.
어떤 연유가 되었던 소똥령이라는 이름에서 풍겨나는 포근함과 진한 고향의 향기는 정겹기만 하다
인제 원통을 지나 진부령 길을 오르기전 내설악광장 휴게소에 잠시들러 버릴건 버리고 시원한 공기에 허리를 펴본다.
휴게소 내부에는 예전 아마도 내가 본것도 4년정도 지났거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요즘 보기힘든 제비들이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우며 열심히 날아 다닌다.
박씨 물어다주는 반가운 제비!!!!!
새끼들이 부화해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있네~~ㅎ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 제비....
휴게소를 지나 진부령을 넘어 본격적은 소똥령 산행 트래킹이 시작된다.
[산행코스] 46번도로-소똥령-1봉-2봉-3봉-묘자리-칡소폭포-생태체험관-소똥령마을
진부령은 미시령과 한계령에 비해 경사가 비교적 낮은 고갯길이다. 하지만 경사가 낮은 만큼 고갯길 정상까지의 길이는 인제와 고성쪽을 합쳐 16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길다
진부령 정상에서 약 10Km 버스로 5분여 내려서자 고성군에 속하는 소똥령 등산로 간판이 눈앞에 나타났다.
뒤돌아 본 진부령...
얼마전까지 위험을 고려해 폐쇄되었던 구름다리 철문이 열려있다. 다행이다...ㅎ
소똥령 고갯길로 들어서 북천계곡 구름다리를 지나자 계곡바람을 타고 코끝을 전해오는 숲 내음이 촉촉하고 싱그럽다
천천히 숲내음을 맡으며 올라가니 한무더기의 흙무덤이 눈 앞에 나타난다. 바로 소똥봉우리이다. 소똥령의 유래가 되었다는 봉우리가 길가에 봉긋하게 자리잡고 앉아 지나는 나그네에게 나침반의 역활을 하고 있다.
포근한 산책길.....
이따금식 들리는 소리 [머리조심.....!!]
흙이 쓸려내려가 나무뿌리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있다...
소똥봉우리에서 소똥령 제1봉까지는 약 20여분이면 도착한다,
소똥령 제1봉까지 가는 길 양옆으로 한아름 들이 굴참나무와 웅장한 노송들이 한데 어우러진 울창한 숲에서 내품는 드라이진 솔내음을 맡으며 걷는 트레킹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소똥령 제1봉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서둘러 바로 언저리에 연속해서 있는 소똥령 제2봉에 이어 마지막 제3봉에 도착하니 표지목 뒤로 웅장한 노송 군락지를 이루면서 굴참나무와 한데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답다,
제2봉 옆에있는 노송에 올라 폼 한번 잡아보고....
멋진 노송군들.....
굴참나무숲을 지난다.
우거진 노송 사이로 이어지는 산길은 이름그대로 힐링코스다....
우산나물....
고개 주변에는 버려진 묘소들이 많은데 대부분 가족들 전체가 한국전쟁 와중에 북으로 넘어가 돌보는 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 가을은 멀었는데....아마도 병이든 잎사귀인듯.....
이곳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난 "칡소폭포"길을 따라 100여미터 정도 가니 넓은 계곡이 나타 나면서 돌사이로 흐르는 물이 합치면서 합수점에서 3여미터의 아래로 떨어지는 칡소폭포가 장관이다,
"칡소폭포는 3미터 높이의 웅장한 폭포로 옛날부터 칡 넝쿨로 그물을 짜서 바위에 걸쳐 놓으면 희귀성 어종인 송어,연어등이 산란을 위하여 폭포를 뛰어 넘다가 칡 넝쿨 그물에 걸려 손쉽게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서 전해온다"
(소똥령 주민들이 세워놓은 안내판에서 발췌)
이런곳에서 사진 안찍으면 바~~보!!
봄철이면 예쁘게 하얀 꽃을 피우는 돌단풍....
가만..이게 산수국인가?? 아니것 같습니다. 꽃잎이 다 지고난 참조팝나무인것 같기도합니다...만!!
참조팝나무....
하산길 끝자락 철다리를 건너고 언덕을 올라서니 넓은 소나무 숲이 펼처지면서 "자연(숲)생태체험 학숩장"안에 들어선다,
싸리꽃....
멀리 언듯 보이는 붉은빛... 뛰어가니 이쁜 말나리꽃이.....
말나리....
뱀딸기...
엉겅퀴....
자연생태숲 철망문.....
큰금계국
금계국은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 입니다. 원산지는 북아메리카 남부이고,요즘은 주로 관상용으로 재배합니다. 꽃은 노란색으로 6월~8월까지 핍니다. 꽃말은 '상쾌한 기분'입니다
개복숭아....
호두....
벗찌....
소똥령마을....
고성군은 북쪽으로 통천, 남쪽으로 속초시, 서쪽으로 회양군과 인제군에 접하고, 동쪽으로 동해에 면하고 있습니다.
장신2리 마을은 오래 전 장신1리와 함께 장밭(長田), 즉 밭이 길쭉이 분포되어 있다고 하여 장전이라고 불렸으며 191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신리로 개칭되었습니다.
백두대간 상의 향로봉을 주산으로 동향에 입지하여 있습니다. 마을의 광역적인 입지는 북향이나 마을은 동향의 입지에 속해 있습니다.
마을의 고도는 300~400지점에 위치하여 준고랭지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제주 가파도에서 공수해온 자리돔으로 회무침을 한다....
막걸리와 회 한점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야외캠핑장이 있어 많은 애호가들이 찾기도합니다...
큰금계국...
화암사로 향하던중 바다내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송지호해수욕장에 잠시 들린다..
하얀 모래사장과 파란 하늘과 바다가 마치 물감을 칠해 놓은듯....
그래도 기념은 하나 남겨야지.....
하얗게 부셔지는 파도의 포말이 넘 이쁘다....
성급한 젊은이들이 그냥 바다로 빠져든다....
송지호해수욕장을 뒤로하고 오늘의 마지막코스 화암사로 향한다. 화암사하면 설악산 화암사가 아닌 금강산화암사로 일주문에 새겨져있다. 금강산 일만이천봉 중에 제일 첫봉우리 신선봉을 일컷는말 이란다.
설악산은 외설악, 내설악, 남설악, 북설악으로 나누어진다.
외설악은 속초시에 속하며 공룡능선과 화채봉능선 사이에 천불동계곡, 권금성, 공룡능선, 울산바위, 금강굴...등 비경을 자랑하고,
내설악은 고성군에 속하며 서북능선과 용아능선, 공룡능선 사이에 십이선녀탕, 봉정암, 백담사, 백담사계곡...등 천혜의 심사유곡을 자랑한다.
남설악은 양양과 고성 사이에 화채봉능선과 서북능선에 점봉산, 가리산, 주걱봉, 대승폭포, 오색약수, 흘림골...등 수많은 청산유수를 만든다.
북설악은 뒤 늦게 설악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화암사라 한 까닭은 이곳에서 '화엄경'이 강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이라 한다.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 금강산으로 들어온 진표가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鉢淵寺)를, 서쪽으로는 장안사(長安寺)를, 남쪽으로는 화암사를 창건하였다.
설악산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백두대간 코스인 미시령에서 신선봉까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북설악에 속한다.
미시령을 넘어 금강산 화암사 일주문에서 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화암사에 들어서니 금강산화암사 일주문이 쓰여있다. 예전같으면 암벽장비를 갖춘 바위꾼들만 갈수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숲길을 조성해서 산행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산행은 화암사일주문에서 부터 시작된다. 기념품을 파는 매점에서 좌틀을 하면 급경사를 타고 조금 오르면 수암을 만나게 된다. 다시 능선을 타고 30분 정도 오르면 고래등처럼 넓은 반석이 나타나는데 신선암에서 바라보는 울산바위와 동해바다는 과연 천하제일의 풍치로다.
[산행코스] 화암사 일주문 ~ 화암사 ~ 수바위 ~ 성인대(신선암) ~ 화암사골 ~ 화암사 ~ 일주문
원래 화암사는 신라시대 진표율사가 창건당시 화엄사(華嚴寺)라 했는데 1912년 개찰하면서 화암사(禾巖寺)로 바뀌었다한다.
조금만 오르면 수암이 금방 나온다. 멀리서 볼 때보다 당연히 엄청 크다. 오르기에 좀 아찔하기도 한데, 어차피 중간 정도까지 밖엔 오르지 못한다. 그래도 중간쯤 가면 울산바위도 보이고, 조금 더 높은 곳에서 화암사도 한번 바라보고 시원한 바람도 맞을 수 있다.
수바위에서 바라본 화암사전경....
등산길로 올라가 산림치유길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전체 4km 정도의 산책 코스 수준인데, 적혀 있는 대로 두 시간 이내로 끊기엔 불가능한 등산로라 생각된다. 난코스는 아니지만 경사도 꽤 가파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경치가 너무 좋아서 그렇게 빨리빨리 다닐 수가 없다. 오르는 길 내내 돌아보면 절경이 펼쳐지고, 정상에서는 어디를 쳐다 봐도 눈을 뗄 수가 없는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멀리 신선봉이 안개속에 가려져있네!
몇년전 저곳을 올랐을때도 비바람이 물아쳐서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내려온 아픈 경험이있어...맘이 짠하다...
수바위....
멋진 금강송군락....
성인대....
양지꽃....
동해와 속초시내....
앞쪽의상봉과 안개에 가려진 뒷편의 신선봉...
좌측 황철봉과 우측의 미시령고개....
바위 웅덩이에 비단개구리가 바글바글....
미시령고개....
속초시내....
신선대 낙타바위 위에서....
울산바위를 배경으로...찰칵!!
신선암....
좌측 달마봉과 울산바위....
조릿대 꽃.....
화암사....
화암사(禾巖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769년(혜공왕 5)진표(眞表)가 창건하여 이름을 금강산 화엄사(華嚴寺)라고 하였다.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 금강산으로 들어온 진표는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鉢淵寺)를, 서쪽에 장안사(長安寺)를, 남쪽에 이 절을 각각 창건했는데, 화엄사라고 한 까닭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화엄경》을 배운 제자 100명 가운데 31명은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갔으며, 나머지 69인은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 진표는 이 곳에서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地藏庵)을 창건하여 이 절의 부속 암자로 삼았다고 한다.
그 뒤 941년(태조 24)월영암(月影庵)을 창건했으며, 1401년(태종 1)지장암을 동쪽으로 옮기고 미타암(彌陀庵)으로 이름을 바꿨다. 1623년(인조 1) 불에 타자 1625년 중건하였다.
1628년에는 광명(廣明)이 지장보살상을 조성했으며, 안양암(安養庵)을 창건하였다. 그러나 1635년 산불이 일어나 다시 불탔다. 이에 동쪽 20리 지점으로 임시 이전했다가 1644년(인조 22)에야 옛터에 중건하였다.
1662년(현종 3)에도 화재가 있어 중건하였고, 1716년(숙종 42)에는 산적들이 불태워 버렸다. 이듬해 승려들은 동쪽으로 10리 가량 떨어진 무릉도(武陵島)에 초옥을 짓고 거주하다가, 1721년(경종 1) 옛 절터로 돌아와 중건하였으며, 해성(海城)은 안양암을 중수하였다.
1760년(영조 36) 대웅전과 향각(香閣), 승당이 불 타자 승려들이 협력하여 이듬해 승당을 세웠고, 1762년에 대웅전과 향각을 중건하였다.
1794년(정조 18)에는 화성 도한(華城 道閑)이 약사전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주야 21일 동안 올렸는데, 기도가 끝나자 방광(放光)이 뻗쳐 그 빛이 궁궐의 뜰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에 정조는 제조상궁(提調尙宮) 최(崔)씨를 이 절에 파견하여 도한을 궁궐로 데려 오도록 하여 경위를 듣고 크게 감격하여 이 절을 가순궁(嘉順宮)의 원당으로 삼았으며, 요사채 2동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1796년에는 미타암의 화응전(華應殿)을 정조의 원당으로 정하여 관음보살상과 정조의 친필 병풍 6폭, 연(輦)을 하사하고, 절의 사방금표(四方禁標)를 정해 주었다. 이로써 이 절은 창건 이래 가장 큰 사역(寺域)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60년(철종 11) 산불로 암자까지 모조리 소실했으며, 춘담(春潭)이 중심이 되어 중건에 착수하였다. 전국 여러 곳을 다니며 시주를 모으고 왕실의 도움을 받아 화엄사와 안양암을 중건했으며, 수봉(穗峰)은 탱화를 조성했다.
1864년(고종 1) 다시 산불로 소실하자 불타지 않은 승당에 임시 법당을 마련하고 지내다가 이 해 지장탱화와 신중탱화, 현왕탱화를 조성 봉안하였다.
그리고 화재를 면하고자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남쪽의 화기를 지닌 수암(秀巖)과 북쪽의 코끼리바위의 맥이 상충하는 자리를 피하여 100m 아래에 절을 짓기로 하였다.
1872년수봉이 새 터에 법당과 영각(影閣), 누각, 요사채를 중건했으며, 1882년(고종 19)자허(耔虛)와 선월(船月)이 철원 장구사(長久寺)에서 아미타여래좌상과 약사여래좌상을 모셔와 봉안하였다.
1893년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안양암이 붕괴되었고, 1894년축성(竺星)이 중수했으며, 1909년영운(影雲)이 안양암에 칠성각을 건립하였다.
1912년에는 사찰령(寺刹令)에 따라 전국 31본산 중 건봉사(乾鳳寺)의 말사가 된 뒤부터 화암사라는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1915년 9월 다시 불타서 1917년 중건하였다. 그러나 1950년 6.25 때 크게 파손되어 건물 1동만 남게 되었다.
1953년 휴전 뒤에 건봉사 극락암에 있던 한 비구니가 정착하여 머물렀다. 1986년에는 주지로 부임한 양설(良說)이 중창하여 다시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삼성각, 인법당(因法堂), 금강루(金剛樓), 일주문, 미타암(彌陀庵), 요사채 등이 있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다.
수암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수암에는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끼니 때마다 그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세 번 흔들면 2인분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욕심 많은 한 객승이 이를 보고 ‘3번 흔들어 2인분의 쌀이 나오면, 300번 흔들면 200인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팡이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구멍에서는 피가 나왔고, 이후 쌀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수바위...
바위 정상부에 길이 1m 둘레 5m의 웅덩이가 있는데 항상 물이 고여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극심한 가뭄을 당하면 웅덩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수바위의 수자를 물수(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바위의 생김이 뛰어나 빼어날 수(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오늘의 흘린땀을 깨끗히 씻어준 혼자만의 알탕 장소...^^
주인들의 친절함과 찬반의 무한리필에 감사를...
초당순두부와 반찬의 깔끔한 맛에 배터지게 먹고나니 온세상이 다 내것으로 보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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