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신을 푸근히 감싸 안는 순천의 壯山 조계산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두 거찰을 끼고 있는 조계산(884.3m)은 전남 순천시 승주읍과 송광면에 위치하고 있다. 조계산은 비교적 낮은 산으로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하다. 선암사 둘레에는 월출봉, 장군봉, 깃대봉, 일월석 등이 줄지어 솟아있다. 조계산(884m)을 중심으로 선암사(仙巖寺)·송광사(松廣寺) 등을 포함하며, 1979년 12월 26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98년 12월에는 사적 및 명승 제8호로 지정되었다.
산세가 수려하고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따뜻하다. 관광의 중심인 송광사는 승보사찰(僧寶寺刹)로 유명하며 가람의 규모도 국내 유수이고, 뛰어난 문화재가 많아 문화재의 보고를 이룬다. 송광사의 개산 당시에는 송광산이라 하였는데 그 후의 개창(開創)과 더불어 조계종(曹溪宗)의 중흥 도장(道場)으로 삼으면서 조계산으로 바뀐 것이다.
정상에서 남해를 바라보는 맛이 그만이다. 좌우의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소장군봉(우측) 연산봉(좌측) 등 조계산 도립공원 전체가 발 아래에 펼쳐진다. 송광사와 선암사의 유명세 탓에 절을 찾는 관광객이 사시사철 끊일새 없을 뿐더러 등산을 목적으로 조계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조계산 산행은 송광사나 선암사 어느 쪽에서 시작해도 비슷한 시간에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 있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평탄한 길이 많아 가족단위 소풍코스로도 알맞다.
산 동쪽에는 선암사, 서쪽으로는 송광사가 있다. 산속의 깊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며, 만수봉과 모후산이 송광사 일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선암사 계곡의 맑은 물은 죽학천과 합류하여 이사천으로 흘러간다. 선암사 둘레에는 월출봉, 장군봉, 깃대봉, 일월석 등이 줄지어 솟아있다. 송광사와 선암사는 유명한 절로 관광객이 사시사철 끊일새 없고 등산을 목적으로 조계산을 찾는 사람도 많다. 조계산 산행은 선암사와 송광사 두 사찰을 들머리로 잡을 경우 모두 회귀산행이 가능하다.
▶ 조계산 등산로의 4대 중심 ( 동서 대찰,정상과 보리밥집)
조계산 등산로 또한 조계산 주능선 동서 양쪽에 각각 자리한 선암사와 송광사를 2대 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 두 사찰에서 시작된 등산로는 방사상으로 뻗어 호남정맥 줄기를 이루는 장군봉~깃대봉간 남북 주능선에서 서로 만난다. 조계산행은 이들 등산로를 조합, 동서 횡단하거나 원점회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중 가장 왕래가 잦은 것은 선암사 - 선암사굴목재 - 송광굴목재 - 송광사로 이어지는 동서 횡단로다. 최고봉을 장군봉을 지나지 않은 이 변두리 횡단 코스의 인기가 최고인 것은 역시 이 산을 찾는 이들의 성향 때문이다.
급경사 길에서의 긴장감이나 숨가쁨 등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애동초 이 조계산은 관심 대상이 되기 어렵다. 담소하며 쉬엄쉬엄 산보하듯 오르노라면 어느새 고갯마루이고, 조금 숨이 가빠질라치면 사방이 탁 트이는 산정에 이르는 그런 두루뭉실한 산이 조계산이며, 또 그런 줄 알고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런 특징이 가장 뚜렷한 변두리 횡단코스의 인기가 가장 높은 것이다.
남쪽 외곽으로 경사가 낮은 고개 두 개만 슬쩍 넘으면 되고, 양쪽에 사계절 두고 풍치가 달라지는 대찰이 있다는 점 외, 이 동서 변두리 횡단 코스가 인기인 데는 중간의 보리밥집의 존재를 거론치 않을 수 없다. 선암사굴목재와 송광굴목재 사이의 아늑한 장박골 가에 자리잡은 보리밥집에서 보리밥 한 그릇 먹고 가볍게 낮잠도 한숨 즐기는 맛이란 비길 데 없는 것이어서, 평일에도 이 동서 횡단로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정상과 더불어 보리밥집이 산행의 정점이 되고 있는 유일한 산이 바로 조계산이다
산행 코스 : 선암사매표소-소장군봉-조계산(장군봉)-범바위-연산봉-작은연산봉-굴목재-송광사
선암사 주차장에서 출~~발!
몇가지 팔아드리고 싶지만 무겁게 짊어지고 갈 수가 없어서....핑계!ㅎㅎ
일곱선녀가 내려와 목욕을하고 올라갔다는 승선교의 아름다움과 강선루.....
강선루...
강선루에는 안과 밖에 ‘강선루(降仙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안쪽은 윤용구(尹用求)의 필이고, 밖의 것은 김돈희(金敦熙)의 글씨이다.
선암사 앞에 연못이 있는데 이름 하여 삼인당 (三印塘)이다.
삼인당은 달걀모양의 연못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신라 경문왕 2년(620년)에 도선국사가 축조한것이라 전합니다.
삼인당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이렇게 세 가지 진리 삼법인(三法印)을 말한다. “이는 모든 것은 변하여 머무는 것이 없고 나(我)라고 하는 것도 없음으로 이를 알면 열반에 든다.” 라고 하는 불심사상을 뜻한다.
선암사[仙巖寺]
542년(신라 진평왕 3)에 아도(阿度) 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사적기〉에 의하면 875년(헌강왕 1)에 도선(道詵) 국사가 남방비보(南方裨補)를 위해 경상남도 진주 영봉산의 용암사(龍巖寺),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의 운암사(雲巖寺)와 함께 선암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1092년(고려 선종 9)에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크게 중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 1660년(조선 현종 1)에 경잠(敬岑)·경준(敬俊)·문정(文正)이 재건을 시작했고, 1698년(숙종 24)에는 호암 약휴(若休)선사가 원통전을 짓고 그 안에 목조관음보살상을 봉안했다. 이어 1701년에는 약 30년간에 걸쳐 완성된 불조전에 과거 53불을 비롯한 60여 구의 목조불상을 봉안했으며, 대웅전의 개수 및 선암사 입구의 석조 다리인 승선교 축조 등 대대적인 확장과 정비가 이루어졌다. 1819년에 불이 나서 건물들이 소실되자 곧 상월(霜月)이 중건했고, 1823년 다시 불이 나자 해붕(海鵬)·눌암(訥庵)·월파(月派) 대사 등이 중수하여 대규모 가람을 형성했다. 이 절은 1911년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사찰령과 사찰령시행규칙에 따라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다. 6·25전쟁 때 많은 건물과 문화재가 소실되었으며,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1호)을 비롯하여 원통전·팔상전·천불각·장경각·강선루 등이 남아 있다. 주요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의 3층석탑 2기(보물 제395호), 입구의 석조 다리인 승선교(보물 제400호), 대각국사진영(보물 제1044호), 대각암부도(보물 제1117호), 북부도(보물 제1184호), 동부도(보물 제1185호), 금동향로(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 화산대사사리탑, 순조가 친필로 쓴 '대복전'(大福田)과 '천인'(天人)이라는 편액 등이 있다.
보물 1311호인 선암사 대웅전..
조선후기의 화려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대각암...
계곡엔 눈이 살포시 내려있다.
향로암 터...
약수 한모금하구....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
원래 정상 장군봉(將軍峰884m)을 조계산이라 했고 서쪽 연산봉(蓮山峰845m)을 옛적 송림이 우거져 송광산(松廣山)이라 하고 그 아래 송광사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송광산을 연산봉이라 하고 정상 장군봉을 중심으로 한 이 산 전체를 조계산이라 칭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백대명산을 접수한다....
연산봉에서 바라본 장군봉(우측).....
여기서 천자암 방향으로 가야만 천자암의 수령 800년이 넘는 두 그루의 곱 향나무 쌍향수(雙香樹; 천연기념물 제88호)를 볼 수 있지만 시간 관계상 아쉬움을 뒤로하고 송광사로 하산을 시작한다.
대피소....
송광사 우화루와 뒤편 침계류
송광사 亞자형 대웅보전
승보사찰 조계총림 송광사(松廣寺)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과 1950년 6,25전쟁 등으로 소실되기도 했던 송광사는 혜린 선사가 창건한 신라고찰로 처음에 길상사라 불렀다한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에 의하여 크게 변모했다. 이때 온 산이 소나무로 덮였던 송광산(松廣山;지금의 蓮山峰845m)아래 자리 잡고 있다 해서 송광사라 개칭되었다한다. 법보사찰 해인사, 불보사찰 통도사와 더불어 삼보사찰의 하나로 지눌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하여 승보사찰이라 칭한다. 송광사 능허교를 건너는 우화루(羽化樓)에는 송광사를 다녀간 수다한 시인 묵객들의 한시가 걸려 있다. 우화루와 이웃하고 있는 침계루(枕溪樓)는 연산봉(옛 송광산)에서 흘러내린 계류를 베개 삼는다는 뜻의 누각이다.
대웅보전의 亞자형 지붕 추녀...
비사리구시
국가 제사시 대중을 위해 밥을 담아두는 것으로 쌀 7가마(4천명분)의 밥이 들어간다고 한다.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
사적 제506호.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로서 이전에는 대길상사(大吉祥寺)·수선사(修禪寺)라고 했다. 한국 선종의 대수도도량으로서 유서깊은 승보사찰(僧寶寺刹)이며, 통도사·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사찰로 꼽히는 절이다. 송광사 창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송광사사적비 松廣寺事蹟碑〉·〈보조국사비명 普照國師碑銘〉·〈승평속지 昇平續誌〉에 의하면 신라말 체징(體澄)이 길상사(吉祥寺)라는 소규모 절을 지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 인종 이후 거의 폐허화되었는데, 1200년 보조국사가 수행결사(修行結社)인 정혜사(定慧社)를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길상사로 옮긴 다음부터 대규모 수도도량으로 발전했다. 고려 희종은 정혜사의 이전과 때를 같이하여 송광산 길상사를 조계산 수선사(修禪寺)로 개명(改名)하라는 제방(題榜)을 내렸고, 이후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180여 년 간 진각(眞覺)·각엄(覺儼)·태고(太古)·나옹(懶翁)·환암(幻庵)·찬영(燦英)·각운(覺雲)·무학(無學) 등 15명의 국사를 배출하는 소위 수선사시대를 열게 되었다. 1395년(태조 4)에 고봉화상(高峰和尙)이 전당을 중건했고, 그의 뒤를 이은 중인(中印)이 1420년(세종 2)에 당우를 증축하는 한편 절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정종의 윤지(綸旨)로 설립된 수륙사(水陸寺)를 폐지하고 선종사찰로 복귀했다. 그후 수선사가 언제 송광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폐사 직전에 놓인 송광사는 응선(應善)과 부휴(浮休) 등의 노력에 힘입어 명맥을 유지했다. 1842년의 화재와 6·25전쟁 등으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거나 파괴되고 다시 중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재 한국 선종을 이끄는 중심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6·25전쟁 전의 가람배치는 의상(義湘)의 법계도(法界圖)와 같았다고 하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국사전(國師殿:국보 제56호)·하사당(下舍堂:보물 제263호)·약사전(藥師殿:보물 제302호)·영산전(靈山殿:보물 제303호)·청량각(淸凉閣)·척주각(滌珠閣)·우화각(羽化閣)·천왕문·해탈문·대장전(大藏殿) 등 50여 동이 있어 대가람의 면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송광사에 있는 중요문화재로는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혜심고신제서(惠諶告身制書:국보 제43호)·고려고문서(高麗古文書:보물 제572호)·경패(經牌:보물 제175호)·금동 요령(金銅搖鈴:보물 제176호) 등이 있으며 1093년 간행된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보물 제205호), 1095년에 간행된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보물 제206호)과 금강반야경소개현초(보물 제207호), 대반열반경소(보물 제90호),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보물 제204호), 영산전목불좌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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